<클라라와 태양> 그리고 사랑

작년, 그러니 2021년은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버닝맨이 2020년에 이어 2년째 취소가 되던 해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취소가 된 버닝맨”에는 나 같은 마니아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였다.  버닝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무작위로 매년 가던 그 사막에 모인것이다. 중앙 관리처가 없으니 화장실이나 응급 의료같은 인프라는 어쩌나, 길이 없는데 인터넷도 안되니 어떻게 다니나, 혹시 코비드로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뒷전이 되어, “취소가 된 버닝맨”에는 전 세계에서 15,000명이 넘게 참석했고, 별 다른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축제의 시간이 가능했던 이유는 참석자들의 사랑때문이라고 믿는다. 즉 버닝맨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중앙 관리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더 배려하고 더 챙겨주며 버닝맨의 원칙을 지켰다. 이렇게 사랑이란 인간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을 되게 하는 슈퍼파워다.

오늘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마음이 웅클했다. 사랑때문이었다.  클라라와 조시의 사랑, 조시 엄마와 조시의 사랑, 릭과 조시의 사랑. 이 셋의 사랑은 다 다른 색이지만 어울렸다. 마치, 이들의 사랑 하나하나가 파도이고, 그 파도는 바다라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클라라는 조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인공 지능 로보트임에도 불구하고 염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액체를 희생한다. 조시는 혹시라도 클라라가 인형이 되어 방에 가두어지는 일은 없도록, 해질녁에는 엄마와의 대화를 멈추고 클라라와 함께 클라라가 그렇게 좋아하는 석양을 봐주고, 클라라가 다락방에 있더라도 바깥을 꼭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조시 엄마의 부작용을 낳은 과도한 욕심과 아파서 죽을 지 모르는 딸인 조시를 인공 지능 로봇으로 복제 하고 싶어 하는 어쩌면 무섭고 잔인한 마음도 그녀의 사랑의 단면이었다. 조시는 자기가 선택했더라도 유전자 변이를 했을거라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조시와 릭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속한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지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그 둘은 클라라가 본 그 남자와 커피잔 아주머니처럼,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는 특별한 순간에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낄것이다. 그것이 사랑이고, 나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20대때 읽었다면 “사랑은 이래야해” 라는 마음이 더 컸을수도 있다. 조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클라라나, 과도한 욕심으로 딸을 아프게 한 조시 엄마나, 사랑하는데도 같이 있지 못하는 조시와 릭에 반발심이 들었을수도 있다. 마흔이 다 되는 지금은 오히려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무한한지, 그리고 느낌이 다른 사랑이지라도 그 안의 숭고함과 신성함에 다시 마음이 울린다.

며칠 전 스타트업을 창업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며 그녀는 감정을 덜 느끼는 요즘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 더 편해졌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건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그녀가 회사를 차린 이유도, 그녀의 고통이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한 것이며, 그 회사를 키워나가는 것도 사랑의 힘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사랑을 더 느끼기를 – 그리고 사랑을 더 느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욕망, 실망, 분노, 고통이라는 모든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느끼기를 - 소망해주었다.  

<클라라와 태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사랑은 우리의 삶의 본질이라고 더 확신한다. 그리고 더 사랑하고 더 사랑을 느끼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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